
집안일 이야기를 읽다가 회사 일이 겹쳐 보인 적이 있다. 한겨레 문화면에서 소개한 ‘기획 노동’이라는 말이었다. 설거지를 하는 것과, 오늘 뭘 먹을지 정하고 재료가 있는지 확인하고 누가 언제 할지를 배분하는 것은 다른 노동인데, 뒤엣것은 일한 것으로 세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시키면 할게”라는 말이 왜 도움이 안 되는지가 그 프레임으로 설명됐다. 시킬 것을 정하는 일 자체가 노동인데, 그 부분을 통째로 남겨 두고 실행만 가져가겠다는 말이니까.
읽다가 손이 멈춘 건, 내가 팀에 해 온 말이 정확히 그거였기 때문이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결과물이 안 남는 노동은 세어지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하나 굴리면 산출물이 남는다. 문서, 코드, 보고서. 그런데 그 산출물을 만들기 전에 누군가는 이런 걸 정한다. 이번 주에 뭘 먼저 할지, 그걸 하려면 누구 확인이 필요한지, 그 사람이 휴가면 언제 돌아오는지, 돌아올 때까지 뭘 대신 진행할 수 있는지.
이 판단들은 어디에도 안 남는다. 회의록에는 결론만 적히고,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머릿속에서 굴린 경우의 수는 안 적힌다. 그래서 잘 굴러가는 프로젝트일수록 아무도 아무 일도 안 한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삐걱대는 프로젝트는 눈에 잘 띈다. 일정이 밀리고 회의가 늘고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래서 조직은 삐걱대는 쪽에 자원을 붙이고, 조용히 굴러가는 쪽은 손대지 않는다. 조용한 이유가 누군가 계속 앞을 치우고 있어서라는 건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운 다음 주에야 드러난다.
“필요하면 말해요”가 왜 도움이 안 되나
이 말은 선의로 한 말이다. 부담 주지 않으려고, 알아서 하게 두려고. 그런데 이 말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숙제가 하나 더 생긴다. 무엇이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일이 그 사람에게 넘어간 것이다.
게다가 그 판단은 정보가 있어야 할 수 있다. 다른 팀 일정이 어떤지, 예산이 얼마 남았는지, 지금 요청하면 늦는지 안 늦는지를 알아야 “이게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정보를 안 준 채로 요청만 받겠다고 하면, 요청은 안 온다. 안 오는 게 문제 없어서가 아니라 요청할 근거를 못 만들어서다.
이 구조가 특히 잘 안 보이는 자리가 신입과 경력 초기다. 그 시기에는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평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묻지 않고, 안 물으니 정보가 안 오고, 정보가 없으니 다시 판단을 못 하는 고리가 생긴다. 나는 이걸 오래 ‘적극성 부족’이라고 오독했다.
돌아보면 나는 이걸 자율이라고 불렀다. 실제로는 판단 비용을 아래로 미룬 것에 가까웠다.
AI 가 가져간 것은 실행이었다
여기에 최근 몇 년의 변화가 겹친다. 초안 쓰기, 자료 정리, 회의록 작성 — AI 가 가져간 건 대부분 결과물이 남는 쪽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업무량은 줄었다.
그런데 안 세어지던 노동은 그대로 남았다. 아니, 오히려 늘었다. 도구가 늘면 뭘 어디에 쓸지 정하는 판단이 늘고, 산출물이 빨리 나오면 그걸 언제 누구에게 보낼지 정하는 일이 늘어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과대평가됐다고 쓴 적이 있는데, 같은 이야기의 다른 면이다 — 어려운 건 지시문을 쓰는 게 아니라 무엇을 지시할지 정하는 쪽이다.
회의도 비슷하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자료를 만드느라 회의 준비에 시간이 들었는데, 지금은 자료가 금방 나오는 대신 ‘이 중 뭘 안건으로 올릴지’ 고르는 데 시간이 든다. 만드는 시간이 고르는 시간으로 옮겨 갔을 뿐 총량은 별로 안 줄었다.
“AI 썼는데 왜 더 바쁘죠”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실행이 빨라지면 기획 노동의 밀도가 올라간다. 줄어든 건 시간이고 늘어난 건 판단 횟수다.
그래서 바꾼 두 가지
거창한 걸 바꾸지는 못했다. 두 가지만 손봤고, 둘 다 ‘판단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쪽이다.
첫 번째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석 달 뒤에 “왜 이렇게 했더라”를 다시 계산하는 시간이 줄었다.
덧붙이면 ‘왜 그쪽이 아닌지’는 길게 쓸 필요가 없다. “예산 때문”, “그 팀 일정과 겹쳐서” 정도면 충분하다. 길게 쓰려고 하면 안 쓰게 되고, 안 쓰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두 번째는 효과가 갈렸다. 어떤 사람에게는 잘 통했고, 어떤 사람에게는 감시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진행 상황을 묻는 것과 막힌 걸 묻는 것은 말투 하나 차이인데 받는 쪽에서는 꽤 다르게 들린다.
이름을 붙인다고 일이 줄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 말을 알게 됐다고 내 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기획 노동은 여전히 안 세어지고, 잘하면 티가 안 나는 것도 그대로다.
다만 번아웃 직전에 프로젝트를 접었을 때 내가 무엇에 지쳤는지는 이제 조금 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그때 힘들었던 건 일의 양이 아니라 아무도 못 보는 판단을 혼자 계속 내리는 상태였다. 이름이 없으면 그 상태를 설명할 수가 없고, 설명 못 하면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다.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있다. 이 이름표를 남에게 들이대는 순간 말이 이상해진다. “내가 기획 노동을 하고 있잖아”는 대화를 여는 문장이 아니라 닫는 문장이다. 나는 이 말을 주로 나를 설명하는 데 쓰지, 상대를 판정하는 데는 안 쓰려고 한다.
그래서 이 글은 해법이라기보다 이름표에 가깝다. 이름이 붙으면 최소한 대화는 시작된다.
이 글에 쓴 근거
- 한겨레(2024) 「’집안일 시키라’는 남편이 놓친 ‘기획 노동’」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71829.html —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을 이 기사에서 빌렸다.
- 그 밖의 서술은 저자의 프로젝트 관리 경험에 따른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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