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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

‘기획 노동’이라는 말을 듣고 내 프로젝트 관리를 다시 봤다

책상 위에 프로젝트 일정이 담긴 포스트잇과 메모지를 정리하며 계획을 세우는 장면

집안일 이야기를 읽다가 회사 일이 겹쳐 보인 적이 있다. 한겨레 문화면에서 소개한 ‘기획 노동’이라는 말이었다. 설거지를 하는 것과, 오늘 뭘 먹을지 정하고 재료가 있는지 확인하고 누가 언제 할지를 배분하는 것은 다른 노동인데, 뒤엣것은 일한 것으로 세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시키면 할게”라는 말이 왜 도움이 안 되는지가 그 프레임으로 설명됐다. 시킬 것을 정하는 일 자체가 노동인데, 그 부분을 통째로 남겨 두고 실행만 가져가겠다는 말이니까.

읽다가 손이 멈춘 건, 내가 팀에 해 온 말이 정확히 그거였기 때문이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결과물이 안 남는 노동은 세어지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하나 굴리면 산출물이 남는다. 문서, 코드, 보고서. 그런데 그 산출물을 만들기 전에 누군가는 이런 걸 정한다. 이번 주에 뭘 먼저 할지, 그걸 하려면 누구 확인이 필요한지, 그 사람이 휴가면 언제 돌아오는지, 돌아올 때까지 뭘 대신 진행할 수 있는지.

이 판단들은 어디에도 안 남는다. 회의록에는 결론만 적히고,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머릿속에서 굴린 경우의 수는 안 적힌다. 그래서 잘 굴러가는 프로젝트일수록 아무도 아무 일도 안 한 것처럼 보인다.

같은 일을 두 가지로 나눠 보면같은 일을 두 가지로 나눠 보면세어지는 노동문서를 썼다 · 코드를 짰다 · 보고서를 냈다산출물이 남고, 남은 만큼 일한 것으로 인정된다vs안 세어지는 노동뭘 먼저 할지 정했다 · 막힐 지점을 미리 치웠다 · 빠진사람 자리를 메웠다‘기획 노동’ 개념(한겨레, 2024)에서 빌린 구분뒤엣것이 잘될수록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산출물 유무로 노동을 세면 조율·판단·책임은 통째로 빠진다.

반대로 삐걱대는 프로젝트는 눈에 잘 띈다. 일정이 밀리고 회의가 늘고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래서 조직은 삐걱대는 쪽에 자원을 붙이고, 조용히 굴러가는 쪽은 손대지 않는다. 조용한 이유가 누군가 계속 앞을 치우고 있어서라는 건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운 다음 주에야 드러난다.


“필요하면 말해요”가 왜 도움이 안 되나

이 말은 선의로 한 말이다. 부담 주지 않으려고, 알아서 하게 두려고. 그런데 이 말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숙제가 하나 더 생긴다. 무엇이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일이 그 사람에게 넘어간 것이다.

게다가 그 판단은 정보가 있어야 할 수 있다. 다른 팀 일정이 어떤지, 예산이 얼마 남았는지, 지금 요청하면 늦는지 안 늦는지를 알아야 “이게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정보를 안 준 채로 요청만 받겠다고 하면, 요청은 안 온다. 안 오는 게 문제 없어서가 아니라 요청할 근거를 못 만들어서다.

이 구조가 특히 잘 안 보이는 자리가 신입과 경력 초기다. 그 시기에는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평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묻지 않고, 안 물으니 정보가 안 오고, 정보가 없으니 다시 판단을 못 하는 고리가 생긴다. 나는 이걸 오래 ‘적극성 부족’이라고 오독했다.

돌아보면 나는 이걸 자율이라고 불렀다. 실제로는 판단 비용을 아래로 미룬 것에 가까웠다.


AI 가 가져간 것은 실행이었다

여기에 최근 몇 년의 변화가 겹친다. 초안 쓰기, 자료 정리, 회의록 작성 — AI 가 가져간 건 대부분 결과물이 남는 쪽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업무량은 줄었다.

그런데 안 세어지던 노동은 그대로 남았다. 아니, 오히려 늘었다. 도구가 늘면 뭘 어디에 쓸지 정하는 판단이 늘고, 산출물이 빨리 나오면 그걸 언제 누구에게 보낼지 정하는 일이 늘어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 과대평가됐다고 쓴 적이 있는데, 같은 이야기의 다른 면이다 — 어려운 건 지시문을 쓰는 게 아니라 무엇을 지시할지 정하는 쪽이다.

회의도 비슷하게 바뀌었다. 예전에는 자료를 만드느라 회의 준비에 시간이 들었는데, 지금은 자료가 금방 나오는 대신 ‘이 중 뭘 안건으로 올릴지’ 고르는 데 시간이 든다. 만드는 시간이 고르는 시간으로 옮겨 갔을 뿐 총량은 별로 안 줄었다.

“AI 썼는데 왜 더 바쁘죠”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실행이 빨라지면 기획 노동의 밀도가 올라간다. 줄어든 건 시간이고 늘어난 건 판단 횟수다.


그래서 바꾼 두 가지

거창한 걸 바꾸지는 못했다. 두 가지만 손봤고, 둘 다 ‘판단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쪽이다.

기획 노동을 보이게 만드는 두 가지기획 노동을 보이게 만드는 두 가지1탈락한 선택지가 안 남으면 판단한 흔적도 안 남는다2판단할 정보를 안 주고 요청만 기다리면 요청은 오지 않는다둘 다 일을 줄이지는 않는다. 어디에 시간이 들어갔는지 보이게 만들 뿐이다.
판단은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된다.

첫 번째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석 달 뒤에 “왜 이렇게 했더라”를 다시 계산하는 시간이 줄었다.

덧붙이면 ‘왜 그쪽이 아닌지’는 길게 쓸 필요가 없다. “예산 때문”, “그 팀 일정과 겹쳐서” 정도면 충분하다. 길게 쓰려고 하면 안 쓰게 되고, 안 쓰면 원래대로 돌아간다.

두 번째는 효과가 갈렸다. 어떤 사람에게는 잘 통했고, 어떤 사람에게는 감시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진행 상황을 묻는 것과 막힌 걸 묻는 것은 말투 하나 차이인데 받는 쪽에서는 꽤 다르게 들린다.


이름을 붙인다고 일이 줄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 말을 알게 됐다고 내 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기획 노동은 여전히 안 세어지고, 잘하면 티가 안 나는 것도 그대로다.

다만 번아웃 직전에 프로젝트를 접었을 때 내가 무엇에 지쳤는지는 이제 조금 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그때 힘들었던 건 일의 양이 아니라 아무도 못 보는 판단을 혼자 계속 내리는 상태였다. 이름이 없으면 그 상태를 설명할 수가 없고, 설명 못 하면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다.

한 가지 조심할 것은 있다. 이 이름표를 남에게 들이대는 순간 말이 이상해진다. “내가 기획 노동을 하고 있잖아”는 대화를 여는 문장이 아니라 닫는 문장이다. 나는 이 말을 주로 나를 설명하는 데 쓰지, 상대를 판정하는 데는 안 쓰려고 한다.

그래서 이 글은 해법이라기보다 이름표에 가깝다. 이름이 붙으면 최소한 대화는 시작된다.


이 글에 쓴 근거

  • 한겨레(2024) 「’집안일 시키라’는 남편이 놓친 ‘기획 노동’」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71829.html —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을 이 기사에서 빌렸다.
  • 그 밖의 서술은 저자의 프로젝트 관리 경험에 따른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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